글 · 차서윤
AI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질수록, 교사인 나는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생각하게 된다.
모르는 것을 설명해주고, 혼자서는 풀기 어려운 문제를 함께 풀어주는 일. 그런 도움을 AI에게서도 받을 수 있다면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기대하는 것은 어떻게 달라질까. 반가우면서도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나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질 것 같아서다.
그렇다고 AI를 쓰는 학생에게 생각하는 힘이 없다고 쉽게 말하고 싶지는 않다. 도움을 받아야 비로소 시작할 수 있는 일도 있다. 머릿속에만 있던 것을 직접 만들어보고, 궁금했던 것을 눈치 보지 않고 물어볼 수 있다는 건 분명 반가운 일이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면 시작하지 못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나 역시 새로운 기술을 보며 설렌다. 배워야 하니까 따라가는 마음만 있는 건 아니다. 이것으로 뭘 해볼 수 있을까 궁금하고, 나도 한번 써보고 싶다. 학생들이 느낄 재미를 생각하면 그 마음부터 막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완성된 결과를 앞에 두고 무엇을 배웠느냐고 물으면 이야기가 조금 어려워진다.
좋은 글을 얻었다는 것과 그 글의 생각에 동의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처음에는 그럴듯하게 읽혔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막힐 수 있다. 틀린 말이라서가 아니라 내가 아직 충분히 생각해보지 않은 말이라서다. 나도 어떤 설명이 마음에 들면 내 생각과 잘 맞는다는 이유로 쉽게 받아들일 것 같다.
그래서 학생이 AI를 썼는지보다 그 답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가 더 궁금하다. 어느 부분에 동의했고, 무엇은 납득이 안 됐는지. 다른 답이 나왔더라도 받아들였을지. 꼭 잘 정리된 대답을 듣고 싶은 건 아니다. 생각해보니 모르겠다는 말에서 더 이야기해볼 수도 있다.
이런 질문은 나에게도 필요하다. 교사라고 해서 그럴듯한 설명에 덜 흔들리는 것은 아닐 테니까.

한편으로는 스스로 생각하라는 말도 조심해서 쓰고 싶다.
학생에게 직접 고민할 시간을 주려면 서툰 결과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AI를 쓰지 말라고 해놓고, 평가할 때는 AI가 정리한 것처럼 매끄러운 글을 기대한다면 학생은 어느 쪽에 맞춰야 할까. 자기 말로 쓰라고 하면서 어른이 좋아할 만한 결론만 칭찬하고 있지는 않은지도 돌아보게 된다.
나부터 보기 좋게 완성된 결과에 점수를 더 주고 싶을 것이다. 읽기 쉽고, 빠진 데가 적고, 설명도 분명하니까. 하지만 조금 어설퍼도 본인이 오래 고민한 흔적이 있는 글을 어떻게 읽어줄 것인가. AI 시대의 교육을 이야기하려면 이런 불편한 문제도 같이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새로운 도구를 가르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엇을 좋은 결과라고 볼지, 어떤 수고를 알아줄지에 대한 내 판단도 바뀌어야 할 수 있다. 아직은 어디까지 바꿔야 할지 잘 모르겠다.
배우는 즐거움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무언가에 흥미를 느끼자마자 어디에 쓸 수 있는지, 어떤 성과가 나오는지부터 묻는 일이 많다. 어른이 되고 나면 더 그렇다. 시간이 들고 돈이 드니 쓸모를 따지는 것이 당연하기도 하다. 다만 모든 재미를 나중에 도움이 될 일로 설명해야 한다면 꽤 피곤하겠다 싶다.
학생에게는 일단 해봐도 된다고 말하면서, 정작 나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 망설일 수도 있다. 교사에게도 서툴게 배워볼 시간이 필요할 텐데, 학생들보다 먼저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마음이 앞선다. 모르는 것을 들키기 싫어서 새로운 것을 피하게 된다면 그건 좀 아깝다.
반대로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쉴 시간까지 다 써버리고 싶지도 않다. 새 기술이 나올 때마다 따라가야 한다면 끝이 없을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과 그냥 궁금한 것, 남들이 하니까 불안해서 알아보는 것을 늘 정확히 구분할 자신은 없다. 적어도 셋을 모두 같은 이유로 여기지는 않았으면 한다.
AI를 잘 쓰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한다. 다만 잘 쓴다는 것이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이 해내는지만을 뜻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학생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듣고 싶다.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으니 오히려 고르기가 어려울 수 있다. 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전부 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남들이 성과를 냈다는 이유로 같은 일을 좋아할 필요도 없다. 이건 학생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면서 나 자신에게도 필요한 말이다.
앞으로 무엇을 알아야 할지는 계속 달라질 것 같다. 그때마다 새로운 내용을 덧붙이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지금까지 내가 중요하게 여겼던 것 중에는 덜 가르쳐도 되는 것이 있을까.
무엇을 더 가르칠지에 대해서는 자주 생각했는데, 무엇을 덜 요구할지에 대해서는 얼마나 생각해봤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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